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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야 진짜


선험적인 판단만을 따르며 살아가는 일의 한계에 맞닥뜨릴 때마다 직접 경험의 소중한 의미를 떠올린다. 여러 제약을 들어 겪지 못하는 이유를 들지만 경험만큼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것은 드물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오롯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마음의 근육과 체력이 바탕이 될 때 직접 느끼고 생각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오감을 자극하는 체험의 연장인 여행만큼 한 사람을 성장케 하는 게 그리 많지 않다고 여길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날것을 고스란히 피사체에 담아내는 후지와라 신야의 삶을 동경해왔다. 20대 때 대학교를 그만두고 스물넷에 인도로 떠나 7년간 그곳을 떠돌며 인도인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흑백 필름에 담아낸 <<인도 방랑>> 여행기는 지금도 책장을 자리하고 있다. 초점이 맞지 않아 흔들린 채로 황야를 걷는 인도여인의 사리 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사진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 작위적인지 않은 사진 한 장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해 인도 언저리만 보고 온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있던 것들을 처분하고 칫솔과 카메라를 넣은 배낭을 간단히 꾸리고 발길 닿는 대로 인도를 떠돈 여행자는 독학으로 사진 공부를 한 셈이다. 획일적인 일상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신야의 삶은 ‘조르바’ 못지않은 자유로움이 빚어내는 일상의 변주곡에 가깝다. 돈키호테 같은 의협심과 도발이 넘치는 신야를 사부로 삼고 싶은 인터뷰어로 지금의 그가 존재할 수 있는 역사를 깊이 이해할 수가 있었다. 바다를 한눈에 보고 자란 모지항에서 보낸 유년기에 이어 여관업을 하다 파산한 아버지 덕분에 인생의 밑바닥 경험을 쌓으며 자아정체성을 형성해갔다. 경제적 빈곤을 탓하기보다는 시련 덕분에 겪은 일들을 통해 자신은 성장하고 깊어질 수 있었음을 확신한 그는 아픔만큼 성숙해짐을 통찰력 있게 끌어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깃들어 있는 진기한 보물들을 끌어내 피사체에 담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신야는 저마다의 삶에서 우러나는 생명력을 사진에 담았다. 2011년 ‘죽지 마, 살아라’ 사진 전시회를 열었을 때 고베 대지진 참사가 일어난 현장을 찾은 저자는 모든 것을 잃고 망연자실해하던 참사의 잔해를 기록하였다. 그는 전시 기간 판매 수익금 전액을 재해 복구를 위해 내놓을 만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심에 놓고 살았다. 노화의 진행이 가속화되면서 풍성하던 머리숱은 듬성듬성해지기 시작하더니 그 사이로 흰머리가 올라와 늙음을 드러낸다. 늙었다는 말을 뱉어 그 말에 사로잡혀 살아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마흔이 되던 해 스웨덴으로 가 1년 머물며 마음을 비우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방법을 찾은 것도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여행 작가·저널리스트·사회운동가·퍼포먼스 예술가 등으로 불리는 신야의 삶은 경계를 뛰어넘는 여행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깔려 있는 철로를 달리지 않겠다는 일흔 다섯의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살아있는 인간의 실체를 보기 위해 거리로 나설 것이다. 생존을 위해 책을 읽고 표현하기를 즐기는 신야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가치 있는 목표를 가진 자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음을 말한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극찬한 신야는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일이 소중함을 일깨운다. 이성적으로만 살기 위해 구상하느라 시간을 소진하기보다는 지금 행하고 싶은 일을 찾아 실행하는 힘을 길러가는 게 더 나은 삶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에는 왕도가 없다고들 하지만 자신만의 근성으로 살아갈 힘을 비축하여 의연하게 살아가는 길은 흔들림이 많은 때에 필요한 덕목임을 되새긴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어른의 어른, 후지와라 신야가 세상을 대하는 방법

2011년 봄, 가까운 일본은 ‘쓰나미’라는 천재天災와 함께 ‘방사능 누출’이라는 인재人災, 두 가지 재해를 동시에 입었다. 국민 모두가 슬퍼하고 분노했던 그때, 방독 마스크를 쓰고 현장에 달려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의 상처를 고스란히 함께 나눈 이가 있다. 한국 독자에게는 인도방랑 이라는 인도 여행의 고전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사진가, 40년 동안 일본 젊은이들의 구루로 인정받아온 후지와라 신야다.

냉철한 현실주의자이며 가슴 따뜻한 휴머니스트 후지와라 신야의 인생과 통찰을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와의 인터뷰로 엮은 겪어야 진짜 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지켜야 할 삶이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인생을 일구고 돌봐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후지와라 신야는 유례없는 재앙을 겪으면서 일본인들이 타인의 슬픔을 공유하고, 누군가를 위해 울기 시작 한 것에 주목한다. 또 경쟁과 성장을 절대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회복할 기회를 준 대지진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본 국민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일본의 비극을 반면교사 삼아달라고 부탁한다. 쓰나미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는 일본 사회의 숙제가 되었다. 그것을 풀기 위해 여전히 애쓰는 신야는 2014년 봄, ‘삶의 의미’를 묻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프롤로그 그에게 내가 가야 할 길을 묻고 싶었다

1장 매일 부서지고 매일 새로워진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느낌 | 인형 코알라, 진짜 코알라 | 고깃덩어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건 | 뭔가를 얻었다는 건 뭔가를 상실했다는 뜻 | 지기 위해, 좌절을 맛보기 위해

2장 시시한 삶은 없다, 위대한 삶도 없다
남은 20퍼센트의 나 | 욕망, 불온하지 않다 | 당신의 인생에 불운만 있었는지

3장 몸이 외치는 소리
나는 방금 바람이 되었다네 | 사막 위 발자국을 찍다 | 여행이라는, 다른 방식의 투쟁

4장 세상의 중심은 나
여관집 아들, 후지와라 신야 | 정말로 목숨 걸고 뛰어들면 | 정해진 건 뭐든지 싫었다 | 그렇게 ‘자아’가 싹텄다

5장 손등으로 뺨을 치는 마음
벳푸항의 74세 삐끼 | 대나무에 마디가 있는 이유 | 말하지 않고 행하는 것

6장 아무것도 되지 못한 불안, 그러나 자유!
도쿄 최고의 구두닦이 | 불안을 한 장만 벗겨내면 | 공중에 매달린 것 같은 날들 |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배우다 | 나를 잃지 않고 사는 법

7장 사랑, 처음부터 있었고 가장 나중까지 남는 것
쓰나미 폐허 속 두 남녀 | 용케도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들의 특권 | 받아도 보고, 퍼부어도 보고, 그러다 실패하고, 헤어져도 보는

8장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허락하는 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셔터는 염불과 비슷한 데가 있다 | 사진도 붓글씨도 사랑의 방편

9장 타인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
나이 마흔에 찾아온 인생의 전환점 | 떠나지 않고 여행하는 법 | 슬픔 또한 풍요로움 | 대지진은 일본에 축복이 될 것입니다 | 신도 도깨비도 없었다 | 죽지 마, 살아라

10장 도시에서 꺾이지 않고 살아가는 법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 혼자서 잘 노는 아이는 없다

11장 죽음 뒤엔 아무것도
‘늙었다’고 말하는 순간 늙기 시작한다 | 길고양이를 만지지 않게 된 것처럼 | 모든 죽음은 숭고하다 | 우리가 늘 죽음을 기억하고 산다면

에필로그 ‘후지와라 신야’라는 오리지널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