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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나혜석,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이며, 시,수필, 소설 등 많은 글들을 발표했던 문인 그리고 떠들썩한 연애로 한국 사회에 이슈가 되었던 여성.... 내가 알고 있는 정월 나혜석은 예술인으로서의 삶보다는 조금은 감각적인 스캔들을 조선 사회에 일으켰던 개화된 신여성 정도였다. 국어 공부를 하면서도 정월의 소설 몇 편을 읽는 정도와 그녀의 생애를 겹쳐서 알게 된 그 정도가 전부라고 하면 맞을 듯하다. 하지만, 학자들의 정월 나혜석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던 온갖 소문들에 대한 올바른 진실을 알려주려는 노력이 일어난 덕분에그녀에 대해새로운 인식을 갖게 만든 기회가 된 듯하다. 시대를 막론하고다른 이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간 사람들의 삶은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됨은 누구나 알고 있다.그래서 많은 이들은 고난으로 가득 찬 길을 대신해 조금은 쉬운 길을 택해서 삶을 살아 가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아무나 위인이 되지는 않는거다" 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가지 않았다고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면 인류 역사는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현대라는 문명 사회를 낳지도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혜석 도 바로 그러한 고난의 길을 선택한 예술인의 한 사람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조금은 개화된 사상을 가진 부모를 둔 나혜석은 오빠의 권유와 뛰어난 그림 솜씨를 살리기 위해 일본으로 미술 공부를 하러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 때부터 한국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에 유학해서 서양화를 배우게 되는 기회를 가지는 나혜석의 생은 분명 선택된 인간의 삶, 그것일 것이다. 1910년 후반의 그러한 혜택은 한국인 아무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닌 좀 더 특별하고 잘난 집안의 자제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이다. 더구나 여성으로서 그러한 길은 시대상으로 더욱더 귀한 일임에 분명하다. 나혜석이 어렸을 때부터 누렸던 부와 자신이 하고자 한 것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자의식이 그 누구보다 강한 여성으로 살아가게 만든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유학길에서도 서양화를 배우는 중에, 춘원 이광수를 통해 문인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게 되고, 글쓰기를 배우게 된다. 그 때부터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 발간되고 있는 문예지에 글을 싣게 되며 동인지 [여자계]를 발간하게 된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에서조선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을 잡아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시기가 된 것으로 보여진다. 나혜석의 남다른 행보와 적극적인 삶의 자세는 일본에서도 이광수와의 연애 소문이 돌게 되고, 자신의 약혼자인 최승구의 사망으로 아픔을 겪게 되지만, 결국 김우영의 계속되는 구애를 받아 들이게 된다. 김우영과의 결혼으로 안정을 찾은 나혜석은 활발하게 그림을 그리게 되고, 미술 대전에서도 여러번 입상을 하게 된다. 또한, 한국인 최초로 서양화 전시회를 하게 되는 행운을 안게 되고, 나혜석 이라는 이름 석 자는 조선 사회에 알려지게 되고, 그녀의 글 한 편, 말 한 마디, 하나의 행보도 이슈가 됨은 당연했다. 그림을 그리는 이외에 나혜석은 여러 잡지에 자신의 글들을 발표하게 되고, 특히 조선 여인들의 남성들에 대한 부당함이나 여성들의 인권 신장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한다. 예술인으로서의 다방면의 모습은 나혜석 그 자체로 보여지고, 책에도 나혜석이 여러 잡지에 발표했던글들이 수록되어 있어 의미가 새로웠다. 더구나 1919년 3.1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김우영(당시 일본제국 만주 안동현 영사관 부영사)의 직급을 이용해서결혼 후에는 독립가들을 돕는 일도 마다하지 않은 사실은 나혜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만든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하고예술인으로서의 훌륭한 삶은남편 김우영과 그녀가함께 한1년 6개월간의 세계 일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 일주를 계기로 그녀의 삶은, 나혜석 이라는 여성이 그동안누렸던영광이몇 곱절 이상의 고난으로 탈바꿈하는 전환점이된 셈이다. 훌륭한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나혜석은 유럽 여행을 통해 예술가로서의감상에 한껏 취했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최린과의 만남은 예고 되었든지 아닌지 그녀의 삶을 나락으로 이끌었다. 여행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 온 나혜석의 최린에 대한너무나도 솔직한 감정의 당당함으로 이혼을 당하게 되고, 더구나 이혼 고백서 를 발표하면서 그녀에 대한 세상의 잣대는 가혹하게 변하기 충분했다. 아직은 조선이라는 사회에 나혜석의 당당함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시기였고, 그녀의 의식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보다 너무나도 앞서 있었기에 그녀의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련의 사건 후에도 나혜석의 그림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었지만, 불행은 갑자기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나혜석의 삶엔 이전에 가졌던 행운보다는 불행의 씨앗이 계속 되기만했고, 그녀도 그러한 불행한 삶에 굴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생을 모든 행운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그녀의 삶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찾아주지 않은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엔 안타까움 그 이상이내 맘을흔들었다. 불행만 계속되는 이혼 후의 삶에 조금의 위안을 받고자 종교(불교)에도 손을 내밀어 보지만, 그녀는 건강마저 악화돼 더ㅇ이상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된 듯하다. 그녀가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기 3년 간의 행적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그 이상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가진 재능이 너무나 많고 뛰어나기까지 한 나혜석,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질시의 대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가진 예술적인 재능보다는 그녀가 행했던 연애사에 좀 더 조명이 맞춰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상황으로 보여진다. 하지만,한 뛰어난 예술인의 불타는 삶에 대한 제대로 된 조명은 꼭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인박명 이라고 했던가, 너무나도 뛰어나고 시대를 앞서 간사상이 그녀의 삶을 불행으로 만들었지만, 이제라도 나혜석 이라는 예술인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제대로 알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그런데, 책 장을 덮는 순간 말 할 수 없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배어나온 것은 또 무슨 조화인가.
온몸으로 근대의 벽을 허문 불꽃의 화가, 나혜석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한국 근대사에 가장 특출했던 여성 선각자의 한 사람인 나혜석 일대기. 나혜석은 근대 한국 여성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시대적 여권 주창의 선도자이며 분명한 민족의식의 소유자이다.

이 책은 나혜석을 소문 속의 흘러간 여인상에서 끄집어내 최초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한 1974년의 나혜석 일대기-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 를 다시 만들었다. 기존에 잘못되었던 기록은 바로잡고 1974년 이후 발견된 나혜석의 글 몇몇도 보완했다. 근대 초기의 화가로서, 여권론자로서 선구적 면모를 주목하고 신문 잡지들 속에 묻혀 있던 나혜석의 생생한 목소리들을 찾아냈다. 아직 나혜석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을 때에 그들을 찾아 말년의 나혜석을 복원하는 데도 힘썼다.


나혜석 그림 1922-1937
다시 쓰는 서문
서문

1896-1917 다재多才
나 참판 댁 둘째 딸 / 첫사랑 / 미술학교 유학 / 나는 주장한다 / 애인의 죽음 / M과 혼인하라 / 여성도 눈을 뜨자 / 나는 여자다

1918-1926 선각先覺
3·1운동 전후 / 김우영과 결혼하다 / 유화 개인전 / 노라의 찬미 / 행복했던 날의 일기 / 김일엽과의 지상 토론 / 전람회의 홍일점 / 1년 만에 본 서울 / 남편과의 대화 / 생활을 개량하자 / 소설 ‘원한’

1927-1929 절정絶頂
구미 여행 / 북구 풍광 / 연말을 베를린에서 / 이탈리아 미술 기행 / 파리 관광 / 프랑스의 가정 / 파리에서 본 것, 느낀 것 / 파리 화단과 화가 생활 / 도버 해협을 건너다 / 부인참정권운동자 회견기 / 런던 구세군 탁아소 심방기 / 정열의 스페인행 / 파리에서 뉴욕으로 / 미국 관광, 태평양 건너 고국으로 / 귀향선

1929-1934 파탄破綻
잡지 기자와의 인터뷰 / 조선에 시급한 의식주의 개량 / 유럽의 시험결혼론 / 파경 직전 / 함정, 최린과의 관계 / 이혼 고백장 / 이혼 고백서 / 재생의 빛 /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 무엇을 할까 / 회고 10년 / 여자미술학사 설립 / 조선미술전 비평 / 암흑과 광명 사이 / ‘이혼 고백장(서)’ 파문 / 최후의 작심, 최린 상대 위자료 청구 소송

1934-1948 고혼孤魂
나는 멀리 떠나련다 / 이성 간의 우정론 / 예술만이 새로운 희망 / 가시덤불 속의 들장미 / 마지막 글 ‘해인사 풍광’ / 무덤 없는 고혼孤魂이 되어

사진으로 남은 나혜석 그림 1922-1932
연보
나혜석 사진 자료
후기